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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온라인 화상을 통해 Debate(논쟁)아닌 Toron(토론)을" 2편

by onsotong 2020. 3. 20.

온라인 화상을 통해 Debate(논쟁)아닌 Toron(토론)을 합시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 및 대학 교육현장에서 교수되고 학습되고 있는 대부분의 토론은 미국식 debate를 모델(예로서 CEDA: 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의회식 등)로 하고 있으며 토론대회의 경우 승패(승률)위주의 경쟁토론 또는 대립토론으로 치러진다.

  미국을 본고장으로 하는 debate는 원래의 의미대로 양측의 경쟁과 다툼, 그리고 승부가 기본 가정이다. 미국 학생들의 대표적인 과외활동 혹은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은 다양한 형태의 debate 대회에서도 학생들의 debate수행을 평가하여 승패를 정해주는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토론대회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토론참여 학생들을 평가하여 승패를 가리는데 리그의 경우는 다승자가, 토너먼트의 경우는 최후승자가 챔피언이 된다. 그러다보니 실전토론에서는 토론이 갖는 다양한 교육적 가치는 실종되고 상대를 제압하여 이기는 것이 토론자들의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토론대회 경험이 많고 토론역량이 쌓여갈수록 이기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된다. 리그의 경우 승률이 낮거나 토너먼트의 경우 한 번이라도 지면 우승자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토론교육의 궁극적 가치인 상호이해(역지사지), 배려심, 소통능력, 겸손 등과 같은 것을 배워 인격을 도야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공격적 언사, 언쟁전략(전술 및 기술)과 말재주 또는 과장된 몸짓이나 제스처와 같은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것들을 습득하여 상대를 이기고자하는 승부욕만 더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결과는 debate를 통해 달성하고자하는 교육적 목표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영어인 “debate”란 말은 그간 우리 교육현장에서 토론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Debate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14세기 말에는 싸우다, 다투다("to quarrel, dispute") 혹은 토의하다, 찬․반에 대해 숙고하다("discuss, deliberate upon the pros and cons")등의 의미로 쓰였다. 프랑스어가 어원이며 13세기에는 “débattre”로 원래는 싸우다(“to fight”)는 의미로서 de는 아래로, 완전히("down, completely")를, batre는 치다, 때리다("to beat")를 나타냈다. 따라서 debate란 말은 싸우다, 치다, 패배시키다 등을 의미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우리말은 논쟁(論爭)이다. 즉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설을 주장하며 다투는 것을 말한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논쟁과 비슷한 또 다른 말로 토론(討論)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흔히 토론이란 말을 19세기 중엽 서방의 의회를 시찰한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에 돌아온 후 debate를 번역한 말로 알고 있지만 15세기 기록된 우리나라 『세종실록』에 이미 등장하고 있다(낙어토론[樂於討論]: 세종이 토론을 즐기는 군주라는 신하의 말). 세종실록에 나타난 세종은 절대군주임에도 신하들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소통함으로써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고 아울러 신하들의 마음을 얻어 재위동안 조선의 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임금이 되었다.

  비록 토론이란 말이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15세기 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토론이란 말은 파자(破字)해 보면 법도 있는 말(말씀 언; 마디 촌은 절도, 순서 있게 말하는 것)로 조리를 세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론(論)(말로 조리를 세운다)]. 아울러 대나무의 마디를 떠올리면 이 같은 말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토(討)의 의미가 “때리다”는 영어의 “to beat"와 같은 의미로도 쓰일 수 있지만 debate나 논쟁처럼 전쟁 혹은 싸움의 의미가 약하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종이 신하들과 의사결정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했던 것을 상기하면 토론(討論: toron)이란 소통을 목적으로 말을 품격을 갖춰 조리 있게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debate보다는 toron이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학교현장에서의 토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토론(debate)의 네 가지 기능, 즉 기만과 불의의 승리를 막아주고, 공중(public)을 교육시키며, 문제의 양 쪽을 이해하게 하고, 그리고 방어의 수단이 된다(Freely & Steinberg, 2009)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토론활동에 참여하여 토론이 이 같은 원래의 기능을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토론교육과 토론대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토론이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토론교육의 장이되고 있는 토론대회가 토론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토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현재 쓰이고 있는 debate란 말 대신 우리말인 토론(討論)의 영어식 표현인 toron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회 운영위원장 허경호 교수(경희대학교 교수․소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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