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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종 대왕 처럼 토론하자!

by onsotong 2020. 3. 9.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주식회사 대표이사)  

리더란 집단 혹은 조직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해서 목표를 달성하거나 위기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구성원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나는 최근 두 사람의 석사 논문을 지도하면서 세종대왕이 가진 리더로서의 소통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치적을 남긴 임금으로만 배워왔던 세종의 행적을 세하게 관찰 기록한 세종실록을 통해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겼을 때 세종이 신하들과 어 떻게 소통을 통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고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태평성대를 이어갔는지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최근 소통 아닌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종의 소통관은 싸움과 승리를 목표로 하는 서양식 토론인 debate(논쟁)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토론 패러다임을 제 시해 준다.


흔히 토론이란 말을 19세기 중엽 서방의 의회를 시찰한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에 돌아온 후 debate를 번역한 말로 알고 있지만 15세기에 기록된 우리나라 『세종실록』에 이미 등장하고 있다(낙어토론[樂於討論]: 세종이 토론을 즐기는 군주라는 신하의 말). 비록 토론이란 말이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15세기 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debate는 상대 제압하고 이기는 것에 중점… 교육적 가치 상실


영어인 “debate”란 말은 그간 우리 교육현장에서 토론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Debate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14세기 말에는 싸우다, 다투다("to quarrel, dispute") 혹은 토의하다, 찬․반에 대해 숙고하다("discuss, deliberate upon the pros and cons") 등의 의미로 쓰였다. 프랑스어가 어원이며 13세기에는 “débattre”로 원래는 싸우다(“to fight”)는 의미로서 de는 아래로, 완전히("down, completely")를, batre는 치다, 때리다("to beat")를 나타냈다. 따라서 debate란 말은 싸우다, 치다, 패배시키다 등을 의미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우리말은 논쟁(論爭)이다. 즉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설을 주장하며 다투는 것을 말한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논쟁과 비슷한 또 다른 말로 토론(討論)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토론이란 단어를 파자(破字)해 보면 법도 있는 말(말씀 언; 마 디 촌은 절도 순서 있게 말하는 것)로 조리를 세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론(論)(말로 조리를 세운다)] 대나무의 마디를 떠올린다면 이같은 말이 서 디 촌은 절도, 순서 있게 말하는 것)로 조리를 세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론(論)(말로 조리를 세운다)]. 대나무의 마디를 떠올린다면 이같은 말이 서 로 끊어져 있지 않고 이어져 있음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토(討)의 의미가 “때리다”는 영어의 “to beat"와 같은 의미로도 쓰일 수 있지만 debate나 논쟁처럼 전쟁 혹은 싸움의 의미가 약하고 앞서 제시한 의미로 더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기에 토론(討論: toron)이란 말에 새삼 주의를 기 울이고자 한다.


현재 미국의 고교 및 대학 교육현장에서 교수되고 학습되는 debate는 원래의 의미대로 양측의 경쟁과 다툼, 그리고 승부가 기본 가정이다. 학생들 의 대표적인 과외활동 혹은 특별활동으로 자리잡은 다양한 형태의 debate대회에서도 학생들의 debate수행을 평가하여 승패를 정해주는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debate 형식으로 학생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토론대회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도 토론대회 성격상 미국과 마찬 가지로 토론참여 학생들을 평가하여 승패를 가리는데 리그의 경우는 다승자가, 토너먼트의 경우는 최후승자가 챔피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실전토 론에서 토론이 갖는 다양한 교육적 가치는 실종되고 상대를 제압하여 이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토론대회 경험이 많고 토론 역량이 쌓여갈수록 이기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된다. 리그의 경우 승률이 낮거나 토너먼트의 경우 한 번이라도 지면 우승자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좋은 성적도 거둘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토론교육의 궁극적 가치인 상호이해(역지사지), 배려, 소통능력, 겸손 등과 같은 것을 배워 인격을 도야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공격적 언사, 언쟁전략(전술 및 기술)과 말재주 또는 과장된 몸짓이나 제스처와 같은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것들을 습득하여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만 더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결과는 debate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적 목표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학교현장에서의 토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토론(debate)의 네 가지 기능, 즉 기만과 불의의 승리를 막아주고, 공중(public)을 교육시키며, 문제의 양 쪽을 이해하게 하고, 그리고 방어의 수단이 된다(Freely & Steinberg, 2009)는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토론활동에 참여하여 토론이 갖는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토론교육과 토론대회는 계 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토론이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토론교육의 장으로서 토론대회가 토론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호 이해를 통한 소통방식인 toron으로 패러다임 바꿔야

나는 토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현재 쓰이는 debate 대신 우리말인 토론(討論)의 영어식 표현인 toron을 제시하고자 한다. Toron은 싸워 이기는데 목적을 두는 debate와 달리 소통에 목적을 둔다. 즉 토론에 참여하는 양측의 목적은 상호이해에 있다. 포스와 포스(Foss & Foss, 2003)는 이를 정복(conquest)이나 설득(혹은 전향, 개종)과 구분하여 초대의 수사학(invitational rhetoric)(혹은 초대의 소통)으로 부르 고 있다. 그렇다. 토론의 목적이 이같은 상호이해를 위한 소통에 있다면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은 물론 토론대회에 참가하는 사람 모두 소통 의 마당에 초대된 사람들인 것이다.


정복과 승리를 지향하는 debate는 양측 토론자들의 경쟁을 지나치게 부추기고 말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해야만 한다는 승부욕을 키 우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상호이해를 위한 소통이 목적인 toron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하여 상대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토론에서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소통기술을 발휘하는 토론자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토론대회에서 듣기 쉽게 말 하고, 이해하기 쉽게 말하며, 정직하게, 그리고 규칙(방식과 평가기준)을 잘 준수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Toron 은, 서양에서 출발했고 미국에서 확산된 debate를 대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교육적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Toron은 인간이 발견해낸 지식발전과 상호이해를 위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선물이다.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가 실천하고 배워서 활용해야 하는 선물인 것이다.


“경연을 한 다음 경연청에 나와서 종일토록 토론하게 하라”(세종실록 00/12/17). 세종은 절대군주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토론의 생산성 을 간파하고 이를 실천하여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치적을 남긴 탁월한 리더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통의 중요한 장르인 토론을 하 면서 상대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려는 정복의 수사학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제 서양식 디베이트를 세종이 실천했던 우리식 토론으로 대체하여 을 해 성원간의 상 이해 진시키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성원을 더욱 행 하게만어 대체하여 토론을 통해 구성원간의 상호이해를증진시키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구성원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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