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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꼬리표를 붙여라!

by onsotong 202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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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경 모 재단에 기고한 칼럼.

내게 꼬리표를 붙여라!

허경호(경희대 교수·언론소통학)

 

얼마 전의 일이다. 학회모임 후 몇몇 교수들이 모여 뒤풀이를 하는 자리였었다. 나는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했다. 즉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학교 교육이 아니어도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 미국의 진면목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고상한 이데올로기의 수호자라기보다는 자신의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이같은 이데올로기를 내팽개칠 수 있으며 때론 독재정권이나 독재자와 쉽게 타협함으로써 오히려 독재정권하의 국민들이 고통을 더 크게 받게 만드는 국익지상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또한 국익을 위해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세계 최장의 군사력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국익 방해세력을 무력화시켜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누군가 나더러 좌파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끝에 이번엔 화제가 북한으로 옮아갔다. 나는 요즘 대학가 운동권의 쇠퇴와 더불어 좌파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주체사상의 우월성이나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인민을 굶게 하고, 특히 어린이를 굶어 죽게 만드는 사람은 어버이로 불릴 자격도, 지도자로 추앙될 자격도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나보고 우파란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마 내가 만약 좌파나 우파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뒤로 빠져 있겠다고 하면 나를 배후세력이라 부를 것이다. 배후세력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서 앞으로 나가면 나를 선도세력으로 부를 것이다. 좌우 혹은 앞뒤에 서도 꼬리표가 붙는 것이 실어 가운데를 고집하면 핵심세력으로 부를 것이다. 꼬리표를 떼기 위해 평면을 벗어나 입체적 감각으로 평면 밑에 서도 지하세력이란 꼬리표를 붙일 것이고 그것이 싫어 나무위로 기어 올라가도 관망 세력이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 혹은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을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 등과 같은 단선적인 축으로 편을 가르고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흔히 글로벌 시대라고 외치면서도 직선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앞과 뒤, 혹은 좌우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글로벌 시대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삶의 좌표를 구의 한 점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구의 표면에는 실로 부수한 점이 존재한다.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라는 단선 축으로는 둥근 지구의 표면에 산재해 있는 무수하고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분해 낼 수 없다. 글로벌 시대는 지구처럼 둥글게 살아야 한다. 특정한 사안을 두고 편을 가르기 보다는 다양한 입장과 태도를 고유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태도야 말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사실 진보나 보수 혹은 좌파나 우파라는 구분은 정치 발전 과정에서 권력을 번갈아가며 쟁취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언론이 여기에 편승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편 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양당의 당파 싸움 망국론이 힘을 얻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담론이 이같은 이분법적 틀에 갇히게 되면 양측이 갖는 공동점이 간과되고 한쪽 측의 내부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간과되어 다양성이 묻히게 되고 결과적으로 양측은 더욱 치열하게 대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 세력의 다원화와 이같은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는 언론매체의 등장이 바람직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립각을 분명히 세우고 갈등을 치열하게 몰아가야만 표를 얻을 수 있고 신문을 팔 수 있기에 단선적 축으로 간편하게 편을 가르고 꼬리표를 붙여 피아를 분명히 가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내 입장을 단선적 축으로 분류하면 나는 좌파일 수도 우파일 수도 진보일 수도 그리고 보수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어떤 특정 세력에 속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해 어떤 특정한 입장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지식, 경험과 가치관으로 나의 입장을 표현할 뿐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논란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가장 극명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사안이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내년 12월이면 다시 대통령 선거다. 이제 더 이상 사업을 중단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원래 의도대로 수원을 확보하고 홍수를 방지할 수 있도록 공사가 잘 마무리되길 기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다만 훗날 과연 이명박 정부가 임기 5년 동안 공들인 4대강 사업이 IT 산업 등을 제쳐두고 21세기 벽두의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최우선으로 역점을 둘 사업이었는가라는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대선 공약대로 이런 사업이 경제가 나아지는데 진정으로 기여했는가를 아울러 평가하게 될 것이다.

최근 불거진 복지논쟁의 핵심 사안은 무상급식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상급식에 반대한다. 부모의 수입에 따라 차등을 두어 혜택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다만 초등학교 급식의 경우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어려서부터 바람직한 먹을거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물론 밥상 공동체라는 강한 전통을 살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나누며 배우는 식사예절 및 습관형성 등도 의무교육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기에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최근 모당 국회의원이 무상급식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면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부모가 속한 계급을 일찍 깨닫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무상급식 반대논리로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현대사의 기술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나는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두어 기술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드러내어 너무도 분명한 독재시대를 미화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무릇 지도자란 공과가 있게 마련이다. 이를 균형 있게 보고 평가하는 것이 한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이쯤에서 도대체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며 내게 회색분자라는 색깔 꼬리표를 붙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게 꼬리표를 붙여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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