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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소통 토론/⊙ 토론과 논증

토론의 역사

by 솔토지빈 2020. 2. 26.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론은 논제의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종류로 나눠집니다. , 사실토론(factual), 가치토론(value), 그리고 정책토론(policy)입니다. 또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살펴봤습니다. 아울러 rhetoric의 역사는 토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sophist들의 이야기를 보완하자면 sophoswise , 현자(賢者)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학문 분야에서는 이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습니다. Sophist들에 대해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당시 이들이 학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는 수사학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후 철학과 그의 저술이 학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sophist들은 자연히 변방으로 물러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수사학과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스승인 플라톤과 달리 rhetoric을 인정한 면이 있고 많은 저술도 남겼습니다. 그가 제시한 유명한 설득의 3요소인 ethos, pathos, logos,도 저술에 담겨 있습니다. 토론학을 배우면서 이 소크라테스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소피스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인물은 토론학의 시조인 프로타고라스입니다. 당시 만물에 관한 주장의 상대성을 언급했던 이론으로 유명합니다(강태완 외, 2001). 정반합, 즉 어떤 주장에는 반대가 존재하기기 마련이고 양측의 충돌이 보다 나은 합을 만든다는 헤겔의 변증법도 사실 프로타고라스의 이론에 기원하여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는 소통의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소통을 통해 인간의 사고든, 시대의 변화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려는 토론학의 원리가 분명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프로타고라스의 기본 전제인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그 만물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헤겔 변증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헤겔의 제자였던 사상가 칼 마르크스 역시 변증법에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적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탄생시켰습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인 이러한 철학이론의 기원이 프로타고라스에 있다는 부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토론학은 수사학(논변학)의 한 분야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주장과 사상은 반드시 반대되는 주장과 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반의 충돌, 즉 토론을 통해 합이 이뤄진다는 의미입니다. 또 개인적 앎은 공공의 장(public sphere)에서 다른 앎을 가진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진정한 앎이 됩니다(강태완 외, 2001).

로마시대 토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주장했으며 이는 인간은 사상이나 생각을 판단할 능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자유로운 언론출판의 자유’, 즉 서로 다른 여러 주장들의 충돌이 더 나은 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상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고 아테네에 존재했던 배심원제도 역시 미국 법정으로 이어졌습니다(강태완 외, 2001).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배심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참여 재판제도가 미국의 완벽한 배심원 제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법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보면 토론을 통하여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 오늘날까지 사법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로마시대 토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시대의 토론은 그리스 시대 토론 문화를 계승했습니다. 첫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등극하면서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전제정이 시작되었습니다(강태완 외, 2001). 로마시대 수사학(논변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치가이자 연설가인 키케로(Cicero)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나와 함께 공화정은 끝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암살되었고 이후로 토론문화가 위축되면서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변질되었습니다(강태완 외, 2001).

이후 법정 토론의 결론을 내리는 주체가 배심원단으로부터 전문지식을 갖춘 판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 직접기소 및 변호에서 검사와 변호인을 통한 대리변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직접 변호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상원의원을 나타내는 말인 senate는 법정토론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고 현재 자주 사용되고 있는 말인 forum, rostrum 또한 당시 토론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강태완 외, 2001).

다음으로 중세시대의 토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중세시대를 소위 암흑기라 부릅니다. 그 이유는 종교에 의해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 활동이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이라는 자유로운 이성적 활동은 차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서양은 과학적 발전에서 동양, 특히 중국보다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천년의 과거를 살펴보면 토론과 같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의 상호교환 활동이 막히면 시대발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력, 논리적 사고전개, 그리고 활발한 논증과 토론을 통한 진리탐구가 지속되어야만 인류가 발전할 수 있음은 우리가 중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입니다. 이 같은 소중한 교훈을 살려 종교와 과학이 서로의 역영에서 역할을 인정하며 상생해야 함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12세기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면서 볼로냐와 파리 등지에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설립된 대학에서는 토론이 학문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기능에 대한 연구가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설립은 바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에 제한을 가하는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던 천년 동안의 중세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이 자유로운 비판적, 이성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대학은 어느 사상적 도그마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사상과 생각들을 교류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진리탐구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역사가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두 국가는 비교적 토론문화가 잘 다져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1265년 설립된 영국하원의 주 업무가 의회토론이었습니다(강태완 외, 2001). 오늘날의 의회식 토론 방식도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또 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의회의 민주적 정치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18세기 중엽 다양한 형태의 토론클럽이 생겨나고 중산층 출신 회원이 정치 사회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15세기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간 토론이 가장 오래된 아카데미식 토론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Freely & Steinberg, 2009).

미국에서의 토론은 타운홀 미팅을 시초로 미국식의 전통적인 토론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링컨더글러스 방식(L-D 방식) 토론의 시초는 1858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노예해방 문제를 놓고 에이브러햄 링컨과 스테판 더글러스가 벌인 토론입니다. 링컨더글러스 방식인 11 토론은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토론 발전에 큰 획을 그은 토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강태완 외, 2001).

1960년대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은 대통령 후보 TV토론의 효시가 되었으며, 케네디가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닉슨 대통령은 미국 50개 주를 다 방문하겠다는 공략을 세우고 TV 토론 당일에도 알래스카에서 연설을 마치고 출발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피로감도 얼굴에 비치고 특히 ‘after five clock shadow’, 즉 오후 5시가 되면 면도한 자리에서 수염이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얼굴이 어둡게 보여 젊고 총명해 보이는 케네디와 달리 TV에는 다소 늙고 초췌한 모습이 비춰졌다고 합니다(Rohler & Cook, 2001). 말솜씨 부분에서는 대등했음에도 낙선했던 것은 이런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역시 TV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TV토론은 장점도 많습니다만 단점도 많습니다. 우선 이슈 중심으로 정책토론을 하기에는 시간이 짧고, 지나치게 이미지 중심으로 토론 전략을 짜기 때문에 동문서답 즉,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허경호·강태완, 1999). 또 실제 내용보다 재치, 유머 중심으로 토론이 이뤄지는데 이런 부분을 보면 TV 토론이 본래 토론 취지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동양의 토론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서양에서만 토론문화가 발전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및 일본에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또 일본의 경우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이 프랑스에서 서양 토론을 배워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종시대에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는 물론 다양한 과학적 발명품이 등장했으며 신하와의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대였습니다. 활발한 소통이 역사 발전을 이룬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향후 세종시대의 토론을 수사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면 살아있는 토론, 즉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토론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 책에서는 실용논리학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겠다는 것과 토론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도서 <논증과 토론(출판: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논증과 토론 도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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